오랫동안 이용되고 시간이 지나도 가치를 더하는 공간. 지속가능한 공간 디자인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핀란드 아모스 렉스 뮤지엄을 설계한 제이케이엠엠 아키텍츠(JKMM Architects)의 패이비 메로우넨(Päivi Meuronen)과 헬싱키의 명소 로울루 사우나 복합단지를 디자인한 아반토 아키텍츠(AVANTO Architects)의 빌레 하라(Ville Hara)를 통해 북유럽 건축과 인테리어의 지속 가능성을 알아봤다
‘왼쪽부터 제이케이엠엠 아키텍츠(JKMM Architects)의 디자이너 패이비 메우로넨(Päivi Meuronen), 아반토 아키텍츠(AVANTO Architects)의 빌레 하라(Ville Hara). 핀란드 헬싱키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두 건축사사무소는 지속가능성에 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있는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각자의 소개를 부탁해요.
패이비 제이케이엠엠 아키텍츠의 디자이너 패이비 메우로넨입니다. 인테리어 콘센트와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어요.
빌레 아반토 아키텍츠의 빌레 하라 입니다. 제품 디자인에서부터 도시 계획까지 다양한 작업을 주축으로 두고 일하고 있어요.
두 분 모두 한국에는 첫 방문인가요?
빌레 첫 방문이에요. 유럽과 많이 다른 문화권이라고 들었는데 잠시 둘러보니 ‘메가시티’라고 할 만큼 큰 도시들이 많은 곳이더군요. 어제는 서울 이태원에도 방문해봤어요. 핀란드의 사우나 문화 처럼 한국에도 목욕 문화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알고 가게 되었으면 해요.
패이비 저는 두 번째 방문이에요. 2006년에 IFI 국제인테리어건축가협회 회의로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땐 아시아의 뉴욕이라는 감상을 가지게 됐어요. 친절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은 물론이고 패션, 디자인, 공예 문야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인상을 받았어요. 이번에도 서울 마포구에 있는 오래된 오일탱크를 개조한 공간에 방문했는데, 굉장히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페이비 메우로넨은 이날 건축의 목적이 미래세대에게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컨퍼런스를 진행했다.
두 분은 한국에 북유럽 건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선례를 보여주기 위해 이 곳에 왔죠, 각자가 연단에서 하고 싶었던 말의 요점을 간단히 설명해주신다면요?
패이비 JKMM의 지속가능성이은 저희가 진행했던 문화적인 프로젝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도서관, 미술관, 공공기관까지요.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엘리트 주의적인 공간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컨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생산성을 가진 공간이라는 점에 늘 주목합니다. 다시 말해 경험 공간인 거죠. 지속가능성이란 건축의 소재와 디자인 외에, 앞으로 그 건물이 사람들에게 어떤 기능을 할 지 미래를 내다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빌레 ‘Avanto’라는 저희의 브랜드네임도 이미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이름이었어요. 핀란드어로 ‘Hole in the ice’를 뜻하는 이름인데요. 핀란드 사람들이 겨울에 언 빙판에 구멍을 뚫어 거기서 수영을 하는 걸 그렇게 부릅니다. 찬 물에 들어갔을 때의 강력한 정신적 충격감과 리프레싱이 되는 경험이 지속가능성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미래세대들이 우리가 즐기는 것을 그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동안에 이 지역을 더 활기차게 만드는 게 지속가능성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인테리어디자인코리아 2019>의 컨퍼런스에서 빌레 하라는 건축의 프로세스가 지역과 연관되어 있고, 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을 때 더 높은 지속가능성의 기준이 생긴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말하고자 했던 지속가능성이 단지 ‘환경을 생각하는 것’의 문제만은 아닌 거네요.
빌레 맞아요. 예전에 건축에서 지속가능성이란 ‘못생긴 건축’을 말하는 것 같았어요. 숲속에 있는 파파 스머프의 집 처럼요.(웃음) 저는 베를린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동안 지속 가능한 건물이 아름다울 수도, 다양한 컬러를 가질 수도 있다는 걸 느꼈어요. 초현대적인 건물도 지속가능성을 대표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됐고요. 어떤 의도가 내재 되어 있느냐의 문제예요.
패이비 JKMM에게도 지속가능성은 늘 최 우선의 문제인데요, 프로세스의 시작점은 늘 인간이에요. 인간에게 이로운 것으로부터 접근을 시작해나가는 거죠.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결국 우리 일의 본질은 사람이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하는 것 이잖아요? 디자이너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내는 게 아닙니다. 디자이너, 건축가, 사용자, 클라이언트가 모두 협력을 할 때 인간 중심적이고 지속 가능한 환경이 생겨요.
아반토 아키텍츠가 2010년 작업한 장례식장 ‘Chapel of St. Lawrence’은 지역의 기후와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벽돌로 구조를 만들고 다양한 심벌 등을 사용한 아름다운 디자인을 선보인다. ⓒAVANTO ARCHITECTURE
핀란드의 모더니즘 디자인과 일본 건축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채플 내부. 빛의 흐름으로 사용자들이 직관적으로 장례식의 다음 절차를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각 절차 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의도해 설계했다. ⓒAVANTO ARCHITECTURE
예배당 내부는 다른 공간들과 달리 층고가 높고 전면에 빛이 드는 구조로 설계됐다. 높은 층고를 이용해 소리와 빛이 공간 내부에 넓게 퍼져, 경건함을 불러일으킨다. ⓒAVANTO ARCHITECTURE
현재 한국 디자이너들 가운데서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그러나 제품디자인부터 건축 분야까지 모든 이들이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단계까지는 협의가 도달하지 못한 것 같아요. 핀란드의 경우 디자인 산업의 모든 단계에서 근본적인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고 들었어요. 어떤 이유들이 산업을 그렇게 이끈다고 생각하나요?
패이비 아마 핀란드인의 생활이 그렇게 만든 걸거예요. 핀란드에는 여름동안 썸머하우스에서 지내는 문화가 있어요. 그동안 숲 속에서 사우나를 하고,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숲에 들어가 버섯이나 과일을 따먹는 게 일상이거든요. 그래서 그 삶을 지켜야 한다는 게 핀란드인의 DNA에 있다고 생각해요.
빌레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고 사는 국가일 수록 그 논의는 점점 더 깊이 있어지죠. 한국도 그렇다고 들었어요. 디자이너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록 더 많은 영역으로 확장돼 나갈 거라고 생각해요.
JKMM은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건축사무소인 만큼, 오늘 강연에서 굉장히 다양한 케이스 스터디를 선보였죠? 본인들의 포트폴리오 중, JKMM을 가장 잘 표현한 케이스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페이비 세르네요키 시티 라이브러리(Seinäjoki City Library). 핀란드에서 도서관은 인권과도 밀접한 공간이에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 즉, 인간의 기본 권리중 하나죠. 옛건물을 리노베이션하고 일부 증축하는 형태로 디자인 했습니다. 타겟이 어린이와 청년들이었기 때문에 JKMM을 더 잘 표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미래의 사용자에게 문화 시설을 투자함으로서, 그들이 도서관이라는 건물을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도록 했거든요.
세르네요키 시티 라이브러리(Seinäjoki City Library) ⓒJKMM Architects. ⓒAVANTO ARCHITECTURE
세르네요키 시티 라이브러리 내부 공간. 구옥의 층고를 더 높게 이용하고 내부 인테리어에 중점을 두어 누구든 편안하게 들를 수 있는 공간으로 레노베이션 했다. ⓒJKMM Architects
지역의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잘 이용하지 않던 세르네요키 시티 라이브러리는 JKMM 아키텍츠와의 작업 이후 혁신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공간으로 변모했다. ⓒJKMM Architects
ⓒJKMM Architects
지난해 헬싱키에 문을 연 JKMM의 프로젝트 ‘아모스 렉스(Amos rex)’는 정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잖아요. 그곳에서 열린 첫번째 전시에만 28만 명이 다녀갔다고 들었어요죠. 어떤 건축물인지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패이비 아모스 렉스는 헬싱키 중심부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계획된 건축물이에요. 프로젝트의 첫번째 도시를 새로운 방법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전시공간 그 이상이 되어야했죠. 그러려면 사람들이 그 공간으로 쉽게 모이게 해 자연스럽게 도시문화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했어요. 그렇게 이 건물의 시그니쳐가 된 중앙 광장이 탄생했습니다. 땅 위로 솟은 돔은 모던하고, 아이들도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디자인했어요.
말씀하셨듯 아모스 렉스의 시그니쳐는 아무래도 굴뚝을 연상케 하는 돔이죠. 어떤 기능을 하나요?
패이비 광장의 돔은 지층에 있는 공간의 창이 되어주기도 하죠.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경관과 정적인 전시 공간 사이의 통로가 되어줍니다. 결론적으로 이 곳은 도시의 컨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곳이자, 이 건물의 정체성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곳으로 탄생했어요.
아모스 렉스 광장. 이 프로젝트에는 10명의 디자인팀이 참여했고, 페이비 메우로넨은 아모스 렉스의 인테리어 컨셉과 디자인을 총괄했다. ⓒJKMM Architects, photo by Angel Gil
아모스 렉스의 전체 구조. ⓒJKMM Architects
광장과 공간의 창이 연결되며, 중앙 계단을 통해 다시 로비로 나오는 구조다. 굴뚝 형태의 창을 통해서 외부가 그대로 보인다. ⓒJKMM Architects, photo by Angel Gil
아모스 렉스의 컬러는 최대한 단조롭게 꾸몄다. 지하층에서 천장은 거대한 조명의 역할을 하는데, 300개의 스폿조명과 스파이럴 모양의 패브릭을 통해서 천장 디자인을 강조했다. ⓒJKMM Architects, photo by Angel Gil
AVANTO의 경우 유럽 내에서도 큰 이슈를 불러 일으킨 로울리(Löyly) 사우나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습니다. 로컬들의 자부심이 굉장히 높다고 들었어요.
빌레 전 그런 줄 몰랐어요.(웃음)
패이비 빌레가 굉장히 겸손하게 말하네요.(웃음) 제 생각에는 로울리 사우나 주변 지역이 모두 활성화 될 정도로 그 건축물이 영향력 있어요. 주변부는 공원처럼 사람들이 들를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되었고, 주변 상업 시설도 생기게 됐거든요. 로울리가 생긴 다음부터 주변 지역에 생기가 돌아요. 그 지역에 대한 가치를 높였어요.
로울리(Löyly) 사우나 외관. 해안 공원에 위치해 있어 해안가를 따라 사람들이 공원처럼 이용할 수 있는 주변 시설들이 있다. ⓒAVANTO ARCHITECTURE
로울리 사우나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빌레 핀란드인에게 사우나는 중요한 공간이에요. 사우나를 일종의 영적인 경험이라고 여기기도 하고, 사회적인 활동이기도 하니까요. 예전에는 골목길마다 공중사우나가 있어서 ‘피니시 컬쳐’가 유지됐죠. 1960~90년대 사이에 아파트가 많이 생기면서 부턴 달라졌어요. 개인의 집 안으로 사우나가 들어왔으니까 공중 사우나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진 거에요. 로울리 사우나가 ‘피니시 컬쳐’의 일부를 부활시켰다고 생각해요. 여행객에게도, 핀란드 인에게도 그 점이 매력적일 거라고 생각해요.
로울리 사우나는 어떤 면에서 지속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나요?
빌레 롤루는 모든 방면에서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무척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일반인들의 접근성이 높고, 주변부 공원과도 어울려야 했죠. 동시에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반대편 골목 건물 사람들의 시야를 확보하는 것도 고려했어요. 건물의 외관은 보통 종이를 제작할 때 쓰이는 작은 소나무의 폐기물을 라미네이팅 한 목재예요. 그걸로 건물 전체를 망토로 덮듯 씌웠죠. 외부 구조물이 장식이자 외부에서 내부를 볼 수 없도록 하는 블라인드 역할을 해요. 철 구조물로 세운 뼈대 위에 4000개가 넘는 조각의 나무 조각이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형태에서부터 많이 고심을 했죠. 내부 레스토랑의 경우에도 목재가 들어간 부분에 모두 폐기 합성목자재를 이용했습니다. 폐기물의 사용을 줄이면서도,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롤루의 지속가능성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블랙박스 형태로 지어진 본 건물을 망토처럼 덮고 있는 것은 폐 소나무를 라미네이팅 해 만든 목재 소재다. 내부에는 3개의 방으로 구성된 사우나와 레스토랑이 있다. ⓒAVANTO ARCHITECTURE
입장권을 소지할 필요 없이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으로서의 지속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로울리. ⓒAVANTO ARCHITECTUREE
목재 패널들은 내부에서는 외부를 볼 수 있지만, 외부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도록 블라인드 역할을 하기도 한다. ⓒAVANTO
각자의 디자인을 표현하는 키워드를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패이비 인간, 놀라움, 평등
빌레 경험, 지속가능성, 아름다움
패이비 아, 아름다움이 있었네요. 확실히 아름다움이란 굉장히 저 평가된 기준이죠.
‘아름다움’이 저평가 된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요?
패이비 사람들은 뭔가가 아름답다고 표현되면, 좀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아름다움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도요.
빌레 맞아요. 고대 로마에서는 건축을 아름다움, 기능, 지속가능성의 산물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아름다움에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아야해요. 본질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아름다움은 굉장히 중요해요. 아름다운 건물이 곧 수익을 내기도 하니까요. 그게 곧 지속가능성으로 연결되죠.
로울리 내부 레스토랑. 레스토랑 인테리어에 사용된 모든 목재는 폐자재를 이용한 것이다. 아반토 건축사사무소는 폐자재를 이용하면서도 모던한 분위기를 낼 수 있도록인테리어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였다. ⓒAVANTO ARCHITECTURE
‘지속가능성 다음으로 논의 되어야 할 문제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빌레 이제는 인구 문제와 기후에 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인구의 발전을 조금 늦춰보는 정도의 절약은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않으니까요. 사람들은 점점 더 오래 살게 되고, 그에 따라 기후에는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핀란드와 한국이 동시에 가지고 있는 문제일 거라고 생각해요.
패이비 리사이클링에 관한 심도 높은 논의도 시작되어야 할 시점이에요. 두 번째 삶에 관한 문제죠. 새로운 빌딩을 지어내기 보다는 기존의 건물들을 재사용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는 디자인이 필요하고, 폐자재들을 새롭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도 제시할 수 있어야겠죠. 서울 마포구의 문화비축기지 처럼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가 새로운 키워드로 떠올라야 할 것 같아요.